2022년 회고록
다소 늦은 감도 있지만, 무튼 2022년 회고를 진행해보려 한다.
이번 회고는 컴퓨터공학도로서의 나 / 그냥 나 두 가지 측면으로 진행해보려 한다.
컴퓨터공학도로서의 2022년
가잔 큰 변화라고 하면, 진로의 변화가 있었다.
2021년 한경훈 교수님의 머신러닝 강좌를 시작으로, 2022년 1학기까지 학부 연구생 / 빅데이터 동아리 (인빅, IBAS) / 챗봇 만들기 / 주식 가격 예측 대회 참여 등 꾸준히 ML 공부를 해왔었다. 하지만, 자칭 타칭 '걱정형 인간'으로서 머신러닝 분야는 내게 리스크가 너무 많았다. 우선 머신러닝 분야로 가면, 대학원을 꼭 가야 할 텐데 학점이 그렇게 좋지 않았고, 돈 버는 것을 늦게 시작하는 것도 별로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학연생을 하며 깨달았는데, 연구를 하면 할수록 내가 맡은 분야에만 specific한 전문가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어딜 가더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컴퓨터공학을 좋아하는 건데, ML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내가 생각하는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여 진로를 벡엔드로 바꾸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1-2학년 때부터 진로를 정하고 1학년 때 교내 동아리, 2학년 때 교외 동아리를 하며 착실히 스택을 쌓아왔을 텐데, 나는 이제 3학년인데 자바공부부터 시작해야 하는 입장이라 막막했다. 심지어 자바는 비효율적인 것이 고착화된 구닥다리언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시작이 힘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혼공자를 공부하며 그런 인식이 모두 깨지게 되었다. 이후 알고리즘계의 태초마을인 코드업 100제를 완주하고, 현재는 영한님의 스프링 강의를 듣고 있다.
나에게 컴퓨터공학도로서의 2022년은 진로를 정하게된 한 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주니어 개발자라고도 할 수 없고, '컴퓨터공학도'라는 말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내 레벨은 낮은 수준이다. 2022년에 충분히 고민했으니, 2023년에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실질적인 레벨을 올리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2022년
이번엔 나의 2022년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올해는 '연초의 성공 / 3학년 1학기의 실패 / 교환학생' 크게 세 덩이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한 줄로 정리하자면, '연초에 작은 성공들로 통해 자신감이 엄청 올라갔다가, 3-1학기 때 건강과 멘탈을 날려버리고, 교환학생에 와서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있다'가 될 것 같다.
연초의 성공
1️⃣ 텀블벅 보드게임 펀딩 성공
보드게임 펀딩을 통해서 추리소설 덕후로서의 자아실현 + 인벤에서의 두번째 창업 프로젝트를 했다. We-ro를 하면서도 느꼈지만, 창업은 정말 하나하나 직접 해야한다는 점에서 정말.. 힘든 것 같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컴공생이지만) 일러스트레이터를 사용해서 그림도 그리고, 배워둔 html로 웹도 만들고, 스토리도 짜고, 택배 포장도(...)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쉬웠던 점은 일정이 부족해서 테스터를 충분히 하지 않은 점, 배송을 늦게 보낸 점 등이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실물 게임이 만들어지고 퍼블리싱되는 과정까지 겪었으니 다음에는 유니티로 게임을 만들고 배포도 해보고 싶다. 정말 힘들고 다른 컴공인들이 쭉쭉 달려나가는걸 보면 조급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일이었다. (여담으로 제품의 가격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텀블벅 수수료 & 세금을 제외하면 남는 게 거의.. ㅎ)
2️⃣ 성적 작학금
우리 학교는 성적 평균이 4.0 이상이면 교환학생 학비 2/3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여기에 들게 하기 위해 2-2학기 성적을 엄청 끌어올렸었는데, 결과가 잘 나와 장학금까지 받게 되었다😊 사실 2021년에 고생한 거긴 하지만, 장학금을 받은 건 올해니까..! 회고록에도 넣어본다.
3️⃣ 토플 졸업
1월 1일 스터디카페에서 교환학생을 가야겠어! 하고 토플 공부법을 찾아보던 게 생각난다.. 과정은 토플 회고록에 자세히 적어두었다. 세 경험 모두 정말 노력해서 이뤄낸 것들이기 때문에, 성취감도 엄청났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자신감도 넘쳤다.
3학년 1학기의 실패
컴공 5대 과목이 모두 포함된 21학점을 몰아 듣고 ML 학연생까지 하니 죽을 맛이었다. 저혈압 + 빈혈 + 기타 등등으로 건강도 지옥으로 가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이맘때즈음 내가 생각했던 인생의 루트의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음에도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해'하는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여러 가지가 종합되어 극복하고 싶은 의지를 상실했었다. 그렇게 거의 모든 과목을 망쳐버렸다. 죄책감과 함께 왜인지 모를 후련한 마음도 들었다.
교환 학생
3-1학기를 망쳐버리고 왔으나, 열심히 사는 나에 대해 믿음을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정말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공부를 하거나 러닝을 하고, 매일 일기를 썼다. 교환학생의 목표는 '교환학생이 끝날 때 내가 나를 사랑하도록'으로 잡았다. 내가 만족할만한 나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여행 갈 때 나는 자바를 공부하고, 책을 읽어갔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한국에서 할 수 없는 걸 해야지', '책은 언제든 읽을 수 있잖아'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역행자에서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중해서 장기적으로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말아라'하는 문장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답답한 기분이 들 때 여행에세이 한 권을 들고 그 자리에서 후루룩 읽어버리곤 하는데, 전에 읽었던 여행 에세이의 내용이 떠올랐다. '반짝이는 일을 미루지 말아요'라는 책에서 작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에피소드를 기록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모든 여행자들의 로망 같은 곳인 동시에 그 과정이 정말 힘들기로 유명하다. 짐을 줄이기 위해 적은 옷으로 생활하고, 밤마다 빨래를 하고 실외에 널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이 순례길에 올랐던 동행들 중에 항상 빨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연을 즐기는 다른 동행들과 반대로 그 사람은 항상 지도를 확인하고, 일정을 못 맞출까 재촉했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같이 분위기를 즐기는 게 아니라 다음날 빨래를 어떻게 할지 걱정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그 책을 읽었을 때는 '아니~ 이런 idiot가 다 있나~ 산티아고 순례길이면 얼마나 좋은 곳인데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교환학생에 와서 자바 공부가 밀릴까 봐 이탈리아로 가는 버스에서도 강의를 듣는 내 모습이 그와 뭐가 다른가 싶었다. 책에서 빨래에만 집착하던 사람이, 어느 날 일행과 동떨어져 '빨래에 집착하게 되기까지의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라고 했던 것처럼 나도 이렇게 되기까지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길게 풀어썼지만, 교환학생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왜 나는 항상 나를 구박하는지, 왜 3학년 1학기 때 터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건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어버렸는지 등. 그리고 그 과정에서 책과 사람을 통해 새로운 관점들을 배울 수 있었다. 스웨덴 친구 Emilia는 스웨덴의 제도에 대해 말할 때 항상 'There's always a second chance'라는 말을 한다. Emilia는 제도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지만, 나한테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들렸다. 뒤쳐질까 봐 두려워하고, 스트레스로 가득 찬 삶을 살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2022년 총 정리
외국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전, 진로를 탐색하고 자신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라는 의미에서 Gap Year가 주어진다고 한다. 2022년은 나에게 Gap year였다. 충분히 고민했고, 충분히 쉬었고,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는 내가 왜 3-1학기에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렸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삶을 너무 재미없게 살았다. 스터디카페 - 집을 반복하며 살았으니.. 내 삶은 [공부 + 공부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구성되어 있던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공부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 나는 한숨 돌리는 것을 죄악시하고, 삶에 있는 행복한 부분들을 무시하며 살았을까,. 왜 나는 진짜 나의 삶이 없었을까,. 를 그라츠에서 버스킹을 보며, 에밀리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펍에서 동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깨달았다. 나는 왜 그렇게 조급 했던 걸까.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여전히 걱정을 한다.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스트레스로 가든 찬 삶을 살더라도 순간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부분을 꼭 짚고 넘어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마지막으로 캐주얼하게 정리를 하자면, 아래와 같다. 여기까지가 2022년 회고이다. 글을 쓸 때마다 엄청 길어지는 것 같은데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건 내 기록이니까~
생산적 영서
- 교환학생 성적 공유 스프레드 시트를 만들고 담당함으로써 추진력, 단체를 관리하는 방법을 깨달음
- 런닝의 즐거움 깨달음
- 독서에 대한 심적 장벽 낮아짐 (밀리의 서재 최고~)
- 교환 준비하느라 온갖 서류 작업을 했기 때문에 잘 준비하는 것에 강해짐
- 토플, 교환학생 덕분에 영어 실력 많이 좋아짐, 의사소통은 가능할 정도
- 생활 스터디(컴공 동기들&모세숲)로 나를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알게 됨
- 일기의 중요성 깨달음
- 회고의 즐거움 깨달음
- 환경을 신경 쓰게 됨. 비건에 눈을 뜨고, 불필요한 육류 소비는 줄이게 됨
- 꾸글을 꾸준히 함으로써 글 쓰는 것에 부담이 없어짐
- 꾸글 4기 -> 5기로 넘어갈 때 필수적인 것만 유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됨
노는 영서
- 보드게임 제작하여 펀딩 성공
- 보드게임 모임 사람들이랑 놀다 보니 다양한 종류의 미니게임(?) 습득,
다양한 모임에서 선보여서 게임 광인 타이틀을 얻음
- k-pop 파티를 organize함으로서 사람을 모아서 노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짐
- 교환 기간 동안 하도 많은 나라를 돌아다녀서 여행에 대한 심적 장벽 낮아짐 -> 한국 가서도 많이 돌아다닐 것 같음
- 나랑 맞는 사람이 얼마나 희귀하고, 그 인연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 노력해야겠다는 걸 깨달음
- 만들어먹는 떡볶이 마스터가 됨 (일주일에 세 번 한 적도 있음)
- 교환 학생 경험을 통해서 E 성격으로 바꾸려 했지만, 실패..
내 성격을 좋아해 주는 친구들도 있고 그들과 어울리는 게 더 좋다는 걸 깨달음
-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 획득
읽은 책 (열심히 읽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더 안 읽음 ㅠ)
- 반짝이는 일을 미루지 말아요
- 빼기의 여행
- 역행자
- 아무튼, 계속
- 매일을 헤엄치는 법
- 달러구트 꿈 백화점 1, 2
- 오늘부터 개발자
- 거울 앞 인문학
-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변신
-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 그리스인 조르바 (2022년의 책으로 선정합니다🍀)
올해의 문장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거지!' - 그리스인 조르바 -
🎃아쉬운 것🎃
- 영어공부를 내 생각만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엄청 성장하지 않음
- 스스로를 더 몰아쳤으면 영한님 강의 진도가 더 나갔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 마찬가지로, 책을 읽지 않고 유튜브를 한 것도 아쉬움!
- 재미만 남는 컨텐츠들을 소비함으로써 맹하게 보낸 시간들이 아쉽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