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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독서

달러구트 꿈 백화점

 


몇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 검증된(?) 책만 읽는 버릇이 든 것 같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몽글몽글한 감성에 젖어있을 무렵,
베스트셀러 1위로 선정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보게 되었다.
몽환적인 제목 + 베스트셀러 라는 조합 때문에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잠든 사람들에게 꿈을 파는 특별한 백화점이다.
잠든 사람은 꿈 백화점에 와서 꿈을 주문한다.
'어제 꿨던 꿈을 주세요, 요즘 꾸는 꿈이 아주 재미있거든요'
하며 꿈을 구매하면, 그 사람은 원하는 내용의 꿈을 꾸고,
꿈에서 깨면 백화점에서의 일은 모두 잊어버린다.
그리고 꿈을 통해 느낀 감정들을 후불로 지불한다.
예를들어 독수리가 되어 하늘을 나는 꿈을 꾸면, 손님은 '시원함', '자유로움' 등의 감정을 꿈값으로 내는 것이다.

책의 주인공은 꿈 백화점의 신입 직원 '페니'이다.
주인공의 설정이 '신입 직원'이므로
독자는 페니가 꿈 백화점에 적응하는 과정을 보며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이해할 수 있다.

페니가 면접을 준비하는 부분에서, 독자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고
페니가 근무할 층을 선택하는 걸 보며 독자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꿈 백화점은 ~~을 위한 곳이고, 1층은~~ 2층은 ~~'하는 것 보다 
주인공의 시점을 빌려 세계관을 설명하여 더 몰입감있었다.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

기발한 소재만 이용하고 그 안에서의 이야기는 잘 풀어가지 못하는 책들도 있지만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기발한 소재를 사용하고, 그 안에서 작가만의 독특한 생각을 재미있게 풀어내서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두번째 챕터 [한밤의 연애 지침서]에는 바쁜 일상 때문에 연애를 미뤄온 여자가 나온다.
비록 연애는 못하고 있지만, 여자에게도 신경쓰였던 남자는 있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다가도 남자와 같이 있는 꿈을 반복해서 꾸게 되자
여자는 자신이 남자를 좋아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평범하게 일어나는 이야기이지만, 책에서는 위 과정을 다르게 해석한다.

여자는 잠에 들어 꿈속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방문한다.
꿈 백화점에서 여자는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는 꿈'을 사간다.
그리고 남자가 나오는 꿈을 꾼다.
꿈에서 깨면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꿈을 '무의식의 반영'이라 믿으므로 여자는 자신이 남자를 좋아하고 있다고 해석하게 된다.
꿈 덕분에 확신을 얻은 여자는 용기를 내어 남자에게 고백을 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계속 꿈에 나와서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확신하게 된다'라는 간단한 내용을
저렇게 재미있고 참신하게 풀어나간다니..
이런 생각을 하는 작가님은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살지 궁금했다.

이렇게 꿈속에서의 일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은 [환불 요청 대소동]에서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트라우마에 관련된 꿈을 꾼다.
트라우마에 관련된 꿈을 꾸고 난 사람들의 반응은 두가지로 갈린다.
아직도 그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스스로의 약함에 대해 자책하거나,
그 시절을 잘 극복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현실을 당당히 살아가거나.
처음에는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꿈을 사간다면 기분 좋은 꿈만 꾸고 싶을텐데..
왜 트라우마에 관한 꿈을 구매하는거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아래 내용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거꾸로 생각하면 온 힘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나갔던 때'
'그 꿈을 견뎌낸 이상, 그건 더이상 트라우마가 아니라 그의 업적이라는 걸 깨닫는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손님들은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어 그 꿈을 구매했다.
하지만 꿈에서 깨면 꿈 백화점에서 자신이 꿈을 구매한 기억은 없으므로
트라우마에 대한 꿈 내용만 생생히 기억하는 것이다.
달러구트는 이후의 발전은 손님들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하이라이트 문장

이렇게 기발한 생각들과 함께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는 것. 말은 쉽지만 실행하기는 쉽지 않지. 하지만 정말 할 수 있게 된다면, 글쎄다. 행복이 허무하리만치 가까이에 있었다는걸 깨달을 수 있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남들과 비교하고, 부족한 것을 찾고, 뒤쳐졌다는 생각을 하고.. 부끄럽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멈출수가 없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부족해보이는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날이 오긴 할까, 내가 주변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지 않을 날이 올까. 아직은 너무 어려운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면 인생이 더 행복해질 것 같긴 하다.

 

바다를 누비는 범고래는 땅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바다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정도와 형태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생명은 제한된 자유를 누립니다.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함이든...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 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바다를 누비는 범고래를 보며 '저 고래는 얼마나 자유로울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 같다. 결국 모든 자유는 제한된 자유. 그러니 내가 무엇에 묶여있어도,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있을 것이다.

 

생각을 좋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향수랍니다.

 

사실 특별한 문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물건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하이라이트를 했다. 현실에서는 의미부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만 뭔가 재미있을 것 같다. (책 속 세계관에서는 정말 생각을 좋은 방향으로 정리하는 효능이 있었다.) 그냥 물건들이더라도, 이건 자신감을 주는 핸드크림, 이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인형 이런식으로 이름을 붙이면 재미있지 않을까. ㅎㅎ

 


총평

아름다운 문장들과 몽환적인 분위기, 각 에피소드에 들어있는 스토리까지 책을 덮고 너무 만족스러웠던 책이었다.
그리고 내 꿈들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옛날에 친했던 사람들이 나오는 꿈으로 자주 꾸는데
그럼 나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뭐라고 꿈을 주문했던걸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꿈을 주문했던 걸까 아니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나오는 꿈을 꾸게 해달라고 했던걸까.
뭔가 너무 감성적으로 가는 것 같긴한데 여튼, 정말 재미있게 잘 읽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