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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독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인트로 (정말 정말 tmi)

 

문득 '내가 왜 이 길을 가야 하지, 왜 계속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일주일을 내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전공 시험이 2주 남았음에도...)
전에는 그냥 '해야 하니까, 남들도 다 하니까'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나를 설득할 별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멈춰섰던 것 같다.
심지어 과사에 전화해 휴학 문의까지 했다.
학부연구생에 계속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말씀을 드릴 시나리오도 다 생각해놨다.
휴학을 하고 뭘 하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냥 이 컨베이어 벨트 같은 인생에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지금 휴학하면 등록금을 환불받지도 못하고,
이번에 5전공을 안 들으면 졸업이 한 학기 늦춰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어떻게든 이번학기를 넘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험까지 남은 11일 동안 시험이 끝나길 벼르며 꿋꿋이 스터디 카페를 갔다.
그리고 매일 일기에 '10일 남았다', '5일 남았다', '이틀만 버티면 된다'라고 쓰며
시험이 끝나면 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혼자서 내린 결론은 절대 내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신념으로 책을 읽었고
휴남동 서점에서 어느 정도 답을 얻은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고민을 하고 방황하지 않았다면, 책에 나오는 말들을 그냥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알맞는 시기에 좋은 책을 읽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

 


저자 소개

황보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LG전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면서도 매일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잃지 않고 있다.

책의 주인공인 '영주'는 책을 읽으며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유럽의 카페에서 여유롭게 책을 쓸 것 같은 작가,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 등
책을 읽으면 책을 쓴 작가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 구절을 읽으며 나도 휴남동 서점을 쓰신 작가님을 생각해봤다.
그리고 작가님은 왜인지 나와 굉장히 닮은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며 자랐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작가 소개를 찾아봤더니 역시..
같은 전공에 같은 진로,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것까지 닮아있었다.

작가, 나, 주인공이 이렇게까지 닮아있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주인공이 하는 말이 작가가 나에게
혹은 내가 나에게 하는 것 같아 참 와닿았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기억할 특별한 책이 될 것 같다.

 


줄거리

대기업에서 탄탄대로를 걷던 주인공 '영주'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안 증세와 번아웃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휴남동에 서점을 연다.
처음 서점을 열고 몇 달 동안은 앉아서 눈물만 흘리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을 바라보다 어릴 적 자신의 방에 있던 책장을 떠올리게 되고
책을 좋아했던 순수한 모습들이 생각나 서점을 제대로 운영해보기로 한다.

바리스타 '민준'을 뽑고, 원두를 수급해오는 곳에서 친언니 같은 '지미'와 친해지고,
북토크에서 작가 '승우'를 만나고,.
서점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등장인물들은 성장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지만, 휴남동 서점은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치유하는 이야기'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될 힐링물'
라고 결론짓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좀 더 섬세하고 따뜻한 소설이다.

 


하이라이트

한 권의 책에 평균적으로 15개 정도의 하이라이트를 하는데
이 책은 하이라이트를 44개나 할 정도로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그중에도 특히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영주가 스스로 생각해낸 답이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이다.
영주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

 

삶에 대한 불안도가 굉장히 높은 사람으로서,.
상황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을 때면 너무 불안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결론을 낸 것이 정답.
그게 오답 것일지라도 오답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다른 답을 안고 달려가면 된다.
'지금의 답이 완벽한 답이 아니어도 된다.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평소엔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보이는 영주가 책을 읽을 땐 뭔가, 그래 좀 뭔가,
뜬구름 잡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민준은 재미있었다.
마치 한 눈을 뜨고 꿈을 꾸는 사람처럼,
영주는 눈 하나로는 현실을 보고 눈 하나로는 꿈의 세계를 보는 사람 같았다.
한 번씩 구름 속에서 몽롱하게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씩씩하게 현실 맞춤형으로 살아가는 것이
영주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걸 민준은 조금씩 이해해갔다.

 

이상한 고민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모순적인 내 모습을 보면서 뭐가 진짜 내 모습인지 혼란스러웠었다.
예를 들면 '나는 소설이랑 시를 좋아하는데,. 코딩을 하는 건 내가 잘못된 자리에 있는 건 아닐까?'
혹은 반대로 '나는 컴공형 인간인데,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사치가 아닐까?'
정말 정말 쓸데없는 고민이었지만 당시엔 정말 심각했었다....
하지만 내 모습을 묘사해놓은 듯한 문장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한 눈을 뜨고 꿈을 꾸는 사람처럼,
현실을 살아가며 가끔 구름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삶이란 원래 복잡한 것.
어쩌면 민준은 원래 복잡한 삶을 단순 명료 깔끔하게 정리하려 해,
요즘 이렇게 괴로운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원래 복잡하고, 섬세한 것.
'정답', '결론'같은 것들은 찾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걸 수도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거든. 아,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바람을 좋아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저녁 바람만 맞으면 숨통이 확 트이는 기분이 들어 얼마나 다행인가.
지옥엔 바람이 없다는데 그럼 여기가 지옥은 아닌 듯하니 또 얼마나 다행인가.
하루 중 이 시간만 확보하면 그런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우리 인간은 꽤 복잡하게 만들어졌지만 어느 면에선 꽤 단순해.
이런 시간만 있으면 돼. 숨통이 트이는 시간.
하루에 10분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아, 살아있어서 이런 기분을 맛보는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시간.

 

내가 바람을 좋아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예쁜 문장들을 좋아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잠들기 직전의 몽롱한 기분을 좋아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덕분에 숨통이 트이고,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고, 지금의 일상이 더 소중해진다.

 


총평

뭔가 재미있게도..
책을 정리하는 독후감을 쓰며,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나에겐 좋은 책이었다.
책에 대한 마지막 감상으로 책에 나온 구절을 쓰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좋은 책의 기준은?
삶에 관해 말하는 책. 그냥 말하는 게 아니라 깊이 있는 시건으로 진솔하게 말하는 책.
작가의 깊은 이해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면,
그 건드림이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게 좋은 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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